
한국 가계부채 GDP 90%, 전세 포함하면 세계 1위
요즘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"집값은 왜 이렇게 비싼데 월급은 안 오르지?" 하는 푸념이 빠지지 않는다. 커피 한 잔 값이 아깝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.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데 왜 우리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는 걸까? 우리나라 장바구니 물가는 그 어느나라보다 높아지고 있다.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'가계부채' 문제다.
GDP와 맞먹는 빚, 한국 가계의 현실
2025년 1분기 기준,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무려 90.3%에 달한다. 국제금융협회(IIF) 통계로는 91.7%로 세계 2위 수준이다. 쉽게 말해 우리나라 1년 경제 규모와 맞먹는 빚을 가계가 지고 있다는 얘기다. 이 수치가 얼마나 높은지 감이 잘 안 온다면, 미국(76.9%), 일본(67.8%), 독일(56.8%) 같은 경제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된다.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이 나라들도 100%를 넘지 않는다.
전세보증금의 충격, 실제로는 OECD 1위
더 충격적인 건 여기에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. 전세라는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라 국제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.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빌린 돈이나 마찬가지다. 2022년 기준 전세보증금은 약 1,058조 원. 이걸 가계부채에 포함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6.8%로 치솟는다. OECD 31개국 중 당당히(?) 1위다. 스위스(131.6%)를 제치고 말이다.
소득 대비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.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6.5%로 OECD 34개국 중 6위다.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면 303.7%로 1위로 올라선다. 내가 1년 동안 벌어서 쓸 수 있는 돈의 3배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. 영국(148.4%), 일본(115.4%), 미국(101.2%)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거의 2~3배 수준이다.
최근 10년, 빚은 늘고 소비는 줄었다
이렇게 빚이 늘어난 건 최근 10년 동안 특히 심했다. 2014년부터 2024년까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.8%포인트나 증가했다. 77개국 중 중국(26.2%포인트), 홍콩(22.5%포인트)에 이어 세 번째로 빠른 속도다.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간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오히려 1.3%포인트 줄었다. 빚은 늘어나는데 소비는 줄어든 것이다.
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이렇게 누적된 가계부채가 민간소비를 2013년부터 매년 0.4~0.44%포인트씩 깎아먹고 있다고 한다. 만약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12년 수준에서 유지됐다면 2024년 소비 수준은 지금보다4.9%~5.4% 더 높았을 거라는 추정이다. 내가 작년에 300만 원을 썼다면, 가계부채만 없었어도 315만 원 정도는 쓸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.
왜 이렇게 됐을까? 원리금 상환 부담의 급증
가장 큰 이유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너무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.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(DSR)이라는 지표가 있다. 내가 버는 돈 중에서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얼마나 쓰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. 2015년 1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한국의 DSR 증가폭은 1.6%포인트로 17개 주요국 중 노르웨이 다음으로 2위였다.
특히 문제는 이 빚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대출이라는 점이다. 집을 사려고 30년 만기로 대출을 받으면 그 이후로 매달 몇십만 원씩 갚아나가야 한다.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부담도 커진다. 게다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6.4%나 된다. 대출 10건 중 7~8건이 변동금리라는 얘기다. 금리가 오르면 바로 내 지갑이 얇아진다.
집값 올라도 소비는 안 늘어나는 이유
집값이 오르면 그나마 위안이라도 되면 좋으련만, 한국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. 다른 나라에서는 집값이 오르면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'부의 효과'가 나타난다. 집값이 올라서 자산이 늘어났다고 느끼면 사람들이 돈을 더 쓴다는 거다. 그런데 한국에서는 집값이 1% 오를 때 소비가 겨우 0.02% 늘어난다. 미국이나 영국은 0.03~0.23%인데 말이다.
왜 그럴까? 우선 집값이 올라도 그걸 현금으로 바꿀 방법이 별로 없다. 역모기지론 같은 주택 유동화 상품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.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도 "나중에 더 좋은 집으로 옮겨야 하는데" 또는 "아이들 집 마련해줘야 하는데" 하는 생각이 앞선다. 집값 상승을 부의 증가가 아니라 미래의 또 다른 지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.
한국은행은 이런 가계부채 문제를 "심근경색이 아니라 동맥경화 같다"고 표현했다. 갑자기 쓰러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경제 전체를 약하게 만든다는 뜻이다.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체감 경기는 계속 나빠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가계부채 문제다.
관리의 시작, 하지만 여전히 험난한 길
그렇다고 마냥 암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. 정부와 한국은행이 6.27 대책, 10.15 대책 등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면서 최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세로 돌아섰다. 2025년 3분기 기준 가계신용 증가율이 0.8%로 둔화됐고, 정부 목표는 중장기적으로 GDP 대비 80%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다.
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. 빚을 급격히 줄이려고 하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다.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빚은 계속 늘어난다.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상황이다. 결국 우리가 왜 돈을 못 쓰는지, 왜 소비가 줄어드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.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. 특히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하면 세계에서 가장 빚이 많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. 이 빚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 생각된다.
'경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| 실물 자산으로 이동하는 돈은 어디까지 갈까 (0) | 2026.02.18 |
|---|---|
| 금·은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 신호일까, 불신의 신호일까 (0) | 2026.02.17 |
| 사람들은 왜 위기 때 금을 사는데, 은까지 같이 오를까? 숨은 이유들 (0) | 2026.02.16 |
| 왜 지금 금과 은 가격이 동시에 오를까? 시장이 보내는 위험 신호 (0) | 2026.02.15 |
| 친환경 경제는 누구에게 불리할까? 전환 과정에서 생기는 진짜 부작용 (3) | 2026.02.13 |
댓글